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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 (The Hunt,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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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샬라송송 작성일20-05-04 23:15 조회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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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


(영화 내용이나 연출의도를 알고싶지 않으신분은 읽지 말아주세요. )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출근하기전 보는 영화는 색다르네요. 발암영화로 유명한 매즈 미켈슨 주연의 <더 헌트>라는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줄거리와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향등을 익히 들어 알은 채 본터라 우려가 앞섰으나, 역시 기대 이상의 영화였습니다.


 스토리는 익히 아시나시피 유치원 남성 교사인 마커스가 소녀 원생 클라라의 모함으로 누명을 쓰게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스토리보다는 연출이 힘을 발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스토리는 불변하는 논리지만, 관객이 저마다 느끼는 연출의도는 다를 수 있죠. 그렇기에 저의 리뷰가 옳다라고는 말하고싶지않고, 그러지 않아야 더 좋은것 아닐까 합니다.


 우선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보고 공감하는 것일테지만, 저는 반대로 '친구 딸 개객끼'를 말하는 영화는 아니다라고 말하렵니다. 영화는 실제로 클라라를 악으로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악의에 차서 거짓을 실토한것도 아니며, 사이코패스도 아니죠. 그저 정서적으로 불안정함을 겪는 어느 소녀일 뿐입니다. 클라라의 거짓말에 속아 마커스를 적대시하는 사람들도 악이 아닙니다. 이 영화엔 악이 없습니다.

 클라라가 원장에게 성추행 사실을 실토한후 마커스를 둘러싼 인물들이 마치 공포영화처럼 동전뒤집 듯 돌변합니다. 개연성이 삐걱거릴정도로 급작스러운 변화가 당연히 낯설죠. 하지만 이성적으로 주변인물들의 입장에서 돌아볼때 주변 인물들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철이 없지도, 악인으로 변화한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들 삶의 터전을 지키려 (오해한)악을 배척하는 태도를 취할뿐이죠.


 영화 <더 헌트>는  누명을 쓰고 견디는 마커스의 내면을 그리기보다는, 마커스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갈등이 나타나는지를 주로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기보다는, 스토리의 생략과 주변인물로 시점이 옮겨가면서 몰입이 다소 환기되는 구조를 띕니다. 아마 영화의 주제를 강하게 드러내기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씬을 예로들어 보겠습니다. 원장이 클라라의 말을 처음 믿기 시작하면서 클라라와 마커스의 동태를 의심하고, 마커스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원장이 마커스의 위치를 묻는 장면 뒤로, 마커스가 집으로 향하는 장면이 붙음으로서 마커스와 대면하는 상황을 생략합니다. 경찰에 신고된 마커스가 경찰에게 어떠한 조사를 받는지 생략되어있고, 한달을 건너뛰어 해고된 상태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친구와 오해를 풀듯하더니 1년의 시간을 건너뜁니다.

 마커스가 누명을 쓰고, 조사를 받고, 해고를 당하는 과정에서 겪는 실질적인 부분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무고한 사람이 이러한 수치를 견딘다'라는 상황은 별로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무고한 사람이 느끼는 분노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누명을 벗으려 피토하며 진실을 외치는 상황을 연출했겠지요.


 또한 중간중간 마커스의 주변인물들로 시선이 옮겨갑니다. 마커스의 연인은 집에 찾아온 클라라를 대하는 마커스를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봅니다. 클라라가 찾아오기전에 여자친구는 학부모들에게 추궁과 설득당하는 상황을 거칩니다. 그뒤에 붙는 씬에서 마커스를 의심하는 여자친구의 시선으로 마커스를 관객은 바라보게 됩니다.

 중반 이후 마커스가 경찰에 체포된 뒤로는 아들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아버지의 주변인물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고군분투하게 되죠. 역시 그 과정에조차 그려지는 주변인물들의 모습은 악의 논리를 광신도처럼 신봉하는 자이기보다, 아들을 걱정하는 휴머니즘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인공에 대한 몰입을 관객은 자꾸 환기하게되고 '마커스가 대립하는 갈등의 원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는 클라라를 악으로, 마커스를 무고한 선으로 그려 고뇌하는 이야기를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공감과 신뢰를 만드는 요소는 무엇이며, 공동체의 신뢰가 깨어졌을때 개인이 맞서게 되는 악이 무엇인지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악은 클라라가 아니며, 이성을 잃은 광신도 들도 아닙니다. 마커스가 맞서야 하는 '인간관계의 혼돈'을 그리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혼돈이라고 표현하는것은 관념적이고 상투적이니, 영화를 보며 떠오른 생각들을 말하려 합니다. 인간이 타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 문명을 접할때, 수용성을 설명하는 지표가 수사학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연구해 정돈된 학문인데 세가지의 개념만 알뿐 저도 문외한입니다. 개념정도만 들어도 사람의 심리가 어떤 과정으로 동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로고스(논리), 파토스(감정), 에토스(도덕성)입니다. 개연성이 맞는 논리에 설득되는것이 로고스, 감정적인 공감으로 설득되는것이 파토스(페이소스), 주체의 성품, 도덕성에 의해 설득되는것이 에토스 입니다. 논리에 의해 설득되는 비중이 가장 클것 같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를 설득력의 가장 큰 부분으로 봅니다. 무려 60%에 달하며 로고스는 10%밖에 되지 않습니다.  에토스의 개념이 모호한데 예를 들면 쉽게 설명됩니다. '유재석이 기부를 했다.'는 말을 들으면 '음~ 좋은 사람이군.'하는 사람이 태반이겠죠? 이게 에토스 입니다.

 방송 <더 지니어스>에서 장동민은 방송인 하연주와 데스메치(두뇌, 심리게임)에서 겨루게 됩니다. 마지막에가서 장동민은 절대로 이길수 없는 패배의 상황에 직면하지만, 심리전을 이용하여 하연주를 압박합니다. 하연주는 장동민이 패배를 인정하지않고 속임수를 가장하자, 천하의 장동민이 실수할리 없다는 거짓논리를 스스로 세워 결국 패배합니다. 이게 에토스 입니다.

 오랜 시간을 알고지낸 사람을 신뢰하고 공감하는 요인이 '에토스'입니다.


 클라라는 치기로 인해 실언을 하지만 마커스의 친구들은 클라라의 말을 믿어버립니다. 마커스와 주변인물들간의 신뢰관계(에토스)를 뛰어넘는 설득력이 작동하여 주변인물들을 주인공과 대립하는 반동인물로 만들어버립니다. 주변인물들의 입장에서 보면(특히 클라라의 부모) 딸의 말을 믿는것에 논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딸이니까, 딸이 성학대를 겪었으니까 오는 에토스와, 감정적 공감인 페이소스에 의해 설득당합니다. 내 딸이 친구에게 성학대를 당했다면 친구를 온전한 시선으로 바라볼수 있을까요? 같은 원생들이 비슷한 성학대의 정황을 토로한다면 이성적 태도를 어디까지 유지할수 있을까요.


 '해고 당했어'라는 한마디로, 1년후에 웃으며 어울리는 정황으로, 관객은 생략된 스토리와 마커스의 내면을 파악해야 합니다.  이 영화는 논리(스토리)를 뭉텅뭉텅 잘라버렸습니다.  아마 스토리보다 중요하게 말하고싶은 감독의 의도가 숨어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것이 '인간관계의 균열'이라고 생각했고, 영화는 균열의 정황과 요인을 악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혼돈과 맞서야하는 마커스가, 고난을 살아가야하는 관객이 품어야 할것은 무엇일까요? 그러한 책임감을 지니고 감상하다보면 영화가 불편하기보다는 상황을 침착하게 직시할 수 있게 됩니다.

 조금더 범위를 넓히면 현대사회에서 혐오가 만연한 현상들로 시선이 뻗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그렇게 된 원인을 해결하기위해 어떤 노력을 할수 있을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장황한 리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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