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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의정의 | 위약(placebo)의 효과는 가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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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남 작성일13-01-05 04:31 조회5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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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약을 심신의학 다음으로 넣는 것은 이 둘이 서로 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믿고 이를 실천하는 것과 모르고 행할 때 생기는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된다. 헨리 비쳐(Henry Beecher) 박사가 2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관찰한 후 이를 의학잡지에 보고한 내용인데, 전투 중 부상을 입고 후송되어 온 군인들이 호소하는 통증과 같은 정도의 상해를 입은 일반인들이 호소하는 통증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남을 알게 된 것이다.


  조직에 입은 상처의 정도는 비슷하더라도, 일반인들에게 상처가 뜻하는 바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걱정과 함께 잘못하면 직장까지도 잃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받은 상처로부터 오는 통증을 더 심하게 만들게 된다. 한편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들에게는 그들의 상처가 주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된다. 우선 전쟁터에서는 죽음의 위험이 주변에 항상 있었는데,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갖게되고, 당분간 전쟁터로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에 군인들은 일반인들보다 통증을 덜 느끼게 된다는 관찰이었다. 같은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서 느끼는 통증에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같은 병이라도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의미에 따라서 통증을 비롯해서 다른 증상에 차이를 보일 수가 있는가? 또한 병의 경과도 다를 수가 있는가?


  우리의 두뇌는 선택적으로 입력시키고 이를 분석/처리할 뿐 아니라 입력/분석/처리된 정보를 출력시킬 때 다른 차원으로 출력이 된다는 가설에 타당성을 갖고있다는 말인가? 왜 같은 현상에 대해서 한 사람이 받아들이는 입장과 태도결정은 다른 사람과 현격한 차이가 나게될까? 이는 상당히 깊은 질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사람에 따라서 다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세상일과 그 일들이 일어나는 주변상황에는 수 만 가지의 변형이 있을 것인데, 그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선택적이지 않고 모두 다 같은 입장을 보인다면 이 세상은 천편일률적으로 진정으로 재미없는 세상으로 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두뇌가 선택적으로 받아들인 후 이를 처리하고 이어서 선택적으로 반응하게 된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사람들의 두뇌가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가지 않고 오히려 일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사람들이 번성하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람들은 외부 및 내부로부터 오는 상황을 그 사람의 경험, 지식, 관점 등 처해있는 입장에 따라서 그 사람에게 맞는 두뇌의 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입력, 분석, 처리 및 출력은 그 사람에게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하게된다는 대전제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위약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만 별다른 오해가 생기지 않게 된다.

 


무시하는 두뇌이면서 동시에 뜻을 찾는 두뇌 : 하워드 브로디(Howard Brody)는, "우리 두뇌는 주관적인 것만 받아들이면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기억도 안 한다. 한편, 우리 두뇌는 뜻을 찾는 작업을 항상 하고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입력, 처리, 보관 및 출력이라는 과정을 갖고있는 기억장치는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리작용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여기에 두뇌로부터 발생하는 감정이 원인이 되어, 몸에서 생기는 변화로부터 발생하는, 느낌까지 합친다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내용이 될 것이다.


  몸밖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의 변화도 끝이 없어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온도, 습도, 기압, 풍향 등 기후의 다양성을 비롯하여 해변, 산중, 들판, 도시 등을 포함한 장소의 다양성, 계절적인 변화는 물론이고 이에 더하여 인간들 사이로부터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건 등을 생각해 볼 때, 몸밖으로부터 오는 자극과 정보도 한없이 복잡하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두뇌와 신경계통은 몸 안 밖에서 벌어지는 모든 복잡한 내용의 자극과 정보에 대하여 이를 모두 수집하지도 않고, 인지하지도 않고, 처리하지도 않고 저장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인간의 두뇌는 모든 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처리하고, 저장한 후 이에 맞는 반응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것들은 무시해 버린다. 두뇌에 입력되는 자극과 정보는 아주 제한되어 있게된다. 모든 것을 주관적으로 처리해 버린다. 사람마다 입장이 다 틀리고 생각과 사상이 다 틀리는 이유인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본다고 표현한다.(tunnel vision)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주어진 모든 자극과 정보를 다 입력시켜서 처리해야 한다면 어떤 사람들이라도 다 미쳐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무시해야 할 지식과 정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때가 있다. 치유의 통로가 막히게 되는 길이다. 남을 용서해준다는 것은 무시하지 못하고 있는 일(잊어야 할)에 대한 것은 무시해야 한다는 뜻을 갖고있다. 무시해도 좋을 것을 계속해서 간직하고 있는 상태에서 벗어 날 때 내적 치유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내적 치유란 막힌 것을 뚫어주는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이 책 "과거 청산" 전체에 흐르는 주제가 될 것이다. 남을 용서해준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이다. 이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아 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선 우리의 두뇌가 어떤 정보와 지식을 입력시키고, 이를 처리하고,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꺼내어서 이를 써먹게 되는지에 대하여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기준이 있다면, 한 가지 기준뿐인가 아니면 다른 여러 가지의 기준이 있게되나? 상당히 복잡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비교적 간단한 기준을 갖고있다. 뜻이 있으면, 두뇌로 입력/처리/저장/출력이 된다. 그 것도 큰 뜻이 있을 때에는 더 잘 입력/처리/저장/출력이 된다. 그저 지나가는 정보와 지식은 깊이 있게 입력/처리/저장/출력되지 않는다.


  명백한 기억 및 작업기억 등이다. 전화번호, 길 이름, 생년월일 등에 대한 입력이 안되어 있으면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게는 된다. 그러나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기억에 특별한 뜻이 따르게 되면 기억도 더 잘 될 뿐 아니라 그 기억으로부터 올 수 있는 생리작용까지도 기대할 수 있게된다. 예를 든다면, 옛날 애인과 만나던 곳은 누구에게나 다 큰 뜻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 곳에 갔을 때 그때의 감정에 휩싸이게 됨은 물론 그 감정에 따른 생리작용까지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일거리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성질을 갖고있다. 일거리를 만든 다음에는 이로부터 뜻을 찾아내려고 한다. 지나 온 과거와 쌓인 경험에 대하여도 뜻을 찾아내야 만족하게 된다. 뜻없는 일에는 금방 실증을 내게되면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게된다. 일단 뜻을 찾아 낸 일에 대하여는 기억도 잘 하게되고, 더 나아가서는 이로부터 오는 생리작용의 발생도 기대할 수 있게된다.


  위약효과는 바로 이런 두뇌의 선택적인 기억장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에 두뇌가 모든 지식과 정보를 아무런 차별 없이, 뜻을 두지 않고 입력, 처리, 저장, 출력시킨다면 위약효과란 나올 수 없게 된다. 이는 마치 컴퓨터나 기계로부터는 위약효과가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컴퓨터는 인격에 의한 선별적인 입력, 처리, 저장, 출력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완전히 기계적인 과정을 통한 작업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계를 조작하는 인간에게는 위약효과가 나올 수 있게된다. 사람이 기계와 다른 이유는 위약효과로도 구별할 수 있다. 같은 물건이라도 어떤 유명한 사람이 사용하던 것이라면 그 값이 엄청나게 뛰게된다. 모든 골동품 가격이 비싼 이유와 마찬가지이다. 이런 물건들에는 해당되는 특별한 뜻이 담겨있기 때문인 것이다.


  사람들은 뜻을 찾는 인격적인 존재들인 것이다. 뜻을 찾아야 하는 인간들은 이를 학문화시켜 실존철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을 만들어 내게된다.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는 과학이 실존철학인 것이다. 사람들은 뜻을 찾게되면 편안해진다. 편안한 상태에서는 원래의 모습대로 되어 가는 과정인 치유가 일어나게 된다. 믿을 때 치유가 발생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좋은 약임을 알고 또한 이를 믿고 복용해야 하고, 좋은 치료를 해 줄 수 있는 의사라고 믿어야 치료효과가 나오게 되어있는 것이다. 좋은 약, 좋은 치료를 해줄 수 있는 의사임을 믿지 않게 되면, 그 내용이야 어떠했던 간에 치유가 일어날 수 없게된다. 같은 약이라도, 이 약을 복용해 보았자 무슨 효과가 있을까? 또는 그 의사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여길 때 치유하고는 거리가 멀어지게 됨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된다.

 

위약효과 : 위약의 효과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위약(placebo = I shall please you, 나는 당신을 즐겁게 해주렵니다 라는 뜻)이란 용어 자체가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있다. 내가 복용하는 이 약은 내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게되면서 그 약을 복용하는 것과, 이 약을 복용해 보았자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겠는가 라는 의심 속에서 같은 약을 복용했을 때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나게된다. 내용은 밀가루로 만든 가짜 약이지만 색깔과 모양은 진짜 약하고 같을 때, 이 약을 진짜 약으로 알고 복용하게되면 해당되는 약의 효과가 나올 수 있게된다.


  이를 위약효과라고 부른다. 위약(가짜라는 뜻)이지만 그 속에서 뜻을 찾게 되면 두뇌에서는 이에 상응되는 약리작용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진짜의 약을 복용하면서도 그 약효에 의심을 품으면서, 즉 그 약이 주는 뜻을 떼어버린 다음에, 약을 복용할 때의 약리작용은 기대치에 도달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위약의 효과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곳이 있다. 제약회사들이다. 제약회사들은 새 약을 만들었을 때, 그 약에 대한 효능을 위약과 비교해서 연구조사의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즉 위약의 효과는 33%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제약회사에서 이번에 나오게 된 약의 효과는 66%라고 말하면서 새로 나온 약의 효능을 선전하는 것이다. 환자가 의사를 찾기만 하더라도 효과를 보게된다. 의사가 입고있는 흰 가운만 보더라도 환자는 벌써 병이 고쳐지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게 된다. 반대로 의사가 입고있는 흰 가운만 보더라도 혈압이 올라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노세보(nocebo) 효과라고 부른다. 위약(placebo) 효과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되는 환자들은 수술 받기 전날 담당의사는 물론 마취의사의 방문을 받게된다. 환자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마취의사도 다음날 마취해 줄 환자에 대하여 잘 알게 됨으로 마취가 더 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된다. 수술 후 경과에 대하여 통증은 하나의 통과의례로 반드시 있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통증에 대한 뜻을 설명해주게 되면 그 환자는 수술 후에 통증이 덜 심하게 됨은 물론이고 수술 후 병발증도 훨씬 덜 심하게 된다.


  이것도 일종의 위약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마취의사가 사용한 테크닉은 첫째, 설명, 둘째, 환자입장에 대한 이해, 셋째, 스스로의 통제력 제고 등을 통하여 환자로부터 신뢰감을 얻고 환자 스스로가 어떤 기대 속에서 스스로 대비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모든 상업광고는 위약효과를 노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같은 상품이라도 좋은 것이라고 믿고 쓰면 좋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 특정한 상품을 유명한 사람과 일치시키는 광고를 하게된다. 유명한 배우나 운동선수, 또는 좋은 경치가 배경으로 발탁된다. 실제로 특정한 상품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유명세를 갖고있는 사람과 또는 경치와 일치시킴으로 그 상품의 가치를 유명하게 만드는 작전인 것이다. 또 어떤 때는 유명한 과학적인 사실과 그 특정한 상품을 일치시키려는 광고도 있다. 같은 위약효과를 보게된다. 광고는 뜻을 찾고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어떤 뜻을 제공해주고 있다.


  위약은 잘된 번역은 아니다. 위약(僞藥)하면 우선 가짜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된다. 위약은 placebo라는 천주교의 만과에 나오는 용어로 앞에서 밝힌 대로 "나는 당신을 즐겁게 해주렵니다."라는 뜻을 갖고있다. 실지로 위약은 긍정적인 뜻을 갖고있고 또한 긍정적으로 쓰여지고 있는데, 현대의학에서는 위약을 마치 잘못된 약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제약회사에서 만든 약은 진짜 약이고 가짜 약인 위약에 비해볼 때 그 효과가 훨씬 더 크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placebo에 대한 번역은 위약보다는 믿게 해주는 약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위약의 효과를 보는 예가 종종 있다. 지금까지 진짜인줄 알고 써 오고있던 물건이 가짜로 판명되고 난 후부터는 그 물건에 대한 신뢰가 갑자기 무너지게 된다. 인간관계에서도 모르고 있을 때는 별 문제가 없다가 알게 된 다음에는 심각한 관계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모르면 약이라는 말도 있다. 다 마찬가지로 쓰이는 말들이다.


  이에 반해서 암시에 의한 믿음이 생길 때 이에 맞는 사고나 행동이 따르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에 맞는 생리작용까지도 생기게 된다. 암시에 의한 최면술은 좋지않은 명성을 갖게된 후 최면술이란 말은 별로 쓰이지 않는 대신에 유도 영상법(guided imagery)이란 용어가 새롭게 도입된 바 있다. 암시를 구체적으로 또한 시각적으로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유도 영상법도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암시를 받아서 두뇌 속에 시각적인 영상을 만들어 가게되면서 이에 따른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오게 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때 잘 유도된 영상법은 몸의 생리작용에도 변화를 초래할 수 있게된다. 위약의 효과를 보게되는 것이다. 심신의학에서 쓰는 방법에 명상법이 있고 또 다른 방법으로 유도 영상법이 있게된다. 점진적 이완법도 심신의학에서 쓰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모두 위약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위약과는 다른 각도로부터 원하는 생리작용을 추구하는 방법도 있다. 조건반사를 통한 방법이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한 조건을 걸어 놓게되면, 이에 따른 결과가 생기게 된다. 운동선수들이 연습을 하는 것은 해당 근육을 튼튼하게 만들려는 의도도 있지만 관절의 반사가 빨라지는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관절이나 근육에만 조건이 붙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몸 아무 곳에라도 조건이 붙을 수 있다. 조건이 붙은 몸은 별생각 없이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수면 및 배변은 전형적인 조건 반사적인 생리작용에 들어간다. 습관도 연습도 같은 효과를 갖게된다.


  좋은 습관이 건강에 좋듯이, 나쁜 습관은 건강에 나쁘게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평소에 좋은 습관을 키워간다는 것은 긍정적인 생리작용을 갖게되는 첩경이 된다고 말 할 수 있다. 반복된 연습을 통한 조건으로 이루어지거나, 암시에 의한 위약효과로 이루어지거나, 우리 몸의 생리는 본인의 생각과 결정을 따라가는 경향을 갖고있다.

 


이야기꾼 :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간추린다면, "우리의 두뇌는 선택적이면서 항상 뜻을 찾고 있는데, 일단 뜻이 있는 내용을 수용하게되면, 수용된 내용이 두뇌에서 처리된 후 이로부터 몸으로 전달되는 기능을 갖고있어 이로 인한 생리작용까지도 이루게 된다."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게된다. 위약에 대한 정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뇌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선택적이고 또한 뜻을 찾는 두뇌 작업을 하는지에 설명을 심리학자인 제롬 브르너(Jerome Bruner)의 설명을 통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제롬 브르너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한 모든 사건들에 대한 뜻을 찾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야기는 시작과 끝이 있고, 이야기 속에는 구조가 있고, 원인과 결과에 관하여 알게되면서, 한 사건이 다른 사건과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해주는 과정이 생기게 되고, 이로 인하여 예측이 가능해지고 또한 어떤 범위 내에서는 통제도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이야기를 해 오면서 살아가고 있다. 다만 이야기가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에는 인생살이로부터 오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 등 인생살이의 내용에 대한 분석과 결론을 얻을 수 있어 구조적으로 채워지는 힘과 추진력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일들은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면서,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 단편적인 사건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석이란 말과 통하는 내용이다. 구슬을 꿰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면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들이 나중에 중요한 갈림길로 나타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아주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도 나중에는 별 중요한 것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때(brain storm)가 혼자서 생각하고 있을 때보다 훨씬 다른 내용을 알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단체나 회사에서 회의를 자주 갖게되는 이유인 것이다. 특히 모든 사람이 이야기 마당에 내어놓을 이야기들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모아가게 되면, 그 과정에서 더 큰 것을 얻게되는 것이 보통이다. 혼자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있어서 대화를 나눌 때 제 3의 내용과 결론을 얻을 수 있게되는 것이다. 의논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일을 알게된다. 과학을 통해서 얻는 지식은 그대로의 값어치가 있게된다. 과학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는 대부분의 경우에 제한점이 있게 마련이다. 대개는 단편적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은 이야기라는 과정을 통해서 단편적인 내용들을 엮어가면서 종합된 내용으로 된 것을 얻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과학적인 지식을 내 지식으로 만드는데는 이야기를 통하면 쉽게 이루어지게 된다.


  최근에 병에 들었던 사람들 중 회복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연구조사가 시작되고 있다.(Eric Casell and Arthur Frank)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더 심한 통증을 호소하면서 병이 악화되는데 반해, 어떤 사람은 통증도 별로 심하지 않고 병이 호전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병으로부터 회복된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많은 힘이 실려 있게된다. 특히 상처받은 이야기꾼(wounded story teller)이란, 같은 상처를 받은 입장에 서서, 즉 눈 높이에서, 쉬운 이야기를 해 줌으로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뜻을 찾게 해주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래서 이야기꾼들은 존경을 받는 것이다. 같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 이야기를 해 줄 때, 즉 눈 높이에서 이야기를 해주게 되면 더 큰 효과를 보게된다. 인류역사상 상처받은 이야기꾼들이 있다. 이들은 인류의 선생으로 추앙을 받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갖고있는 아픔을 본인 스스로가 맛본 후에 이를 눈 높이에서 쉽게 전달해줄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픔에 대한 뜻을 쉽게 찾을 수 있게되기 때문이다. 아픔에 대한 뜻을 모를 때는 더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특히 아픔의 뜻을 모르는 어린이들은 더 심한 통증을 호소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을 내릴 수 없고, 따라서 아무런 뜻을 발견할 수 없을 때 통증이 더 심해질 수 있고 더 깊은 병으로 된다. 목표와 희망이 안 보이는 것이다. 치료를 받고있는 중이라도 경과가 좋지 않게 되는 경우에는 이야기를 바꾸어 보아야 한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있어야 하고, 이야기를 정리한 후 다른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한다. 실지로 환자들이 의사에게 갔을 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의사의 치료를 받는 것이 더 효과를 낸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이야기를 잘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병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을 뿐 아니라 내 편이 되어준다는 뜻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뢰가 가는 사람으로부터 어떤 뜻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게될 때, 이야기를 통한 뜻을 찾게되면서 치유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관심과 돌봄 : 관심과 돌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하고 행할 수 있다. 병든 사람에게는 약과 치료 뿐 아니라 주변에서 어떤 관심과 돌봄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 같은 약이나 치료라도 어떤 관심과 돌봄의 분위기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가에 따라서 그 결과에 차이가 나게된다. 무뚝뚝한 남자 의사만 있는 것보다는 상냥한 여자 간호사들이 있을 때 환자들은 더 편안하게 된다. 어려서 아팠을 때 따듯한 어머니의 손길을 생각해보면 된다. 아버지로부터는 믿음직스러운 기억인 반면에, 어머니로부터는 관심과 함께 따듯한 돌봄 두 가지 기억이 다 나게되는 것이 보통이다. 어떻게 보면 관심과 돌봄의 분위기는 여성적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환자가 있는 집에서는 환자주변에 따듯한 관심과 돌봄의 치유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게 된다. 치유란 환자 스스로가 이루 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고, 주위의 사람들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의 치료행위는 환자의 치유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딸이 해산할 때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서 해산을 돕는 친정 어머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친정 어머니의 도움을 받는 딸은 해산이 훨씬 쉬어진다. 어머니 자신의 경험으로 알게되는 산지식을 믿는 것이다. 친정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같은 여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마찬가지이다. 해산이라는 여자만의 통과의례라는 특징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관심과 돌봄은 여성적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많은 친구를 사귀고있던 사람이 병으로 입원했을 때 들어오는 꽃다발 숫자와 방문객의 숫자에 비례해서 병으로부터 회복되는 율이 비례한다는 보고도 있다. 혼자서 외롭게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을 생각해보면 된다. 병에 든다는 것은 평형으로부터 깨어졌다는 뜻이고, 병으로부터 회복된다는 것은 평형을 되찾는다는 뜻이다. 한 사람의 평형상태가 그 사람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이때 더 흥미로운 사실은, 관심과 돌봄을 받는 사람에게만 치유의 힘이 더 생기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돌봄을 베푸는 사람에게도 치유의 힘이 증가되는 것이 관찰된 연구조사가 있다. 치유는 한 사람의 범위를 넘어서는 힘을 갖고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조사가 있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맥클리랜드(David McClelland)는 일단의 학생들을 상대로 다음과 같은 연구조사를 한 바 있다. 테레사 수녀가 인도의 빈민들을 구제봉사 하는 비디오를 보여준 후 학생들의 침을 조사해 본 결과, 침 속에 있는 면역물질(IgA)이, 비디오를 보기 전에 비해서 올라가 있음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즉 관심과 돌봄에 대한 비디오 내용만 보고도 면역이 올라가게 된 것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실험으로, 학생들을 무작위로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은 다른 제목의 공부를 시켰고, 다른 집단은 계속해서 관심과 돌봄에 대한 제목으로 일정한 시간을 보내게 했다. 얼마 후 침으로부터의 면역물질을 측정해 보았더니, 다른 제목의 공부를 한 학생들은 IgA가 떨어져 있음이 관찰된 반면에 계속해서 관심과 돌봄에 대한 제목에 집중한 학생들은 IgA가 계속해서 높이 책정되어 있음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관심과 돌봄에 대하여는 앞으로도 많은 연구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으로는 병든 사람에게는 여성적인 자상한 관심과 돌봄의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병든 사람들의 치유능력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있고 또한 이를 실천해 오고있는 중이다. 다만 이론적인 결론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인 사실에 익숙해지면서, 어떻게 하면 더욱 효과가 있는 관심과 돌봄의 사역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농도깊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병 문안을 가는 것은 병든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병 문안을 가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위약의 효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 : 위약의 효과는 가짜인가? 라는 제목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병든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많은 관심과 돌봄을 기대하게 된다.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병과 싸우는 것보다 여럿이 같이 싸우게 될 때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병 문안을 가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 끝에 병 문안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병든 사람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병 문안을 가는 것이다.


  병 문안을 가면 그 사람의 병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을 알 뿐 아니라, 내가 병에 들었을 때 그 사람도 병 문안을 올 것이라는 기대도 포함되어 있다. 병 문안이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은 각자 다르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거의 모든 스트레스는 사람들로부터 오게되는 것이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이 둘 사이에 어떤 형태로든지 균형을 이루고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사람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치유효과 사이의 균형인 것이다. 이 균형이 잘 맞아있을 때는 건강인 반면에, 이 균형이 깨어진 상태를 병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치유의 분위기는 긍정적인 뜻이 모아질 때 생기게 된다. 긍정적인 위약의 효과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위약은 긍정적인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약의 효과를 정리한다면,"위약의 효과란 긍정적인 뜻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관심과 돌봄의 기대와 이로부터 생긴 결과로 인하여,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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