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란 | 치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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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남 작성일13-01-05 04:29 조회646회 댓글0건본문
치유의 가장 높은 경지는 예방차원에서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이제 점점 더 오래 살게되어 본격적으로 장수를 하게 된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이에 맞는 건강계획으로 우리에게 장치되어있는 치유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주어진 수명을 다 하고 가야 할 것이다.
이에 맞는 건강계획에는 실천하려는 동기가 생기면서 이를 실천해야 병의 압축이 오면서 건강한 인생 후반기를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치유를 정의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으로 치료는 치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치료와 치유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의사가 하는 의료행위는 치료에 속한다. 의사는 치유를 하지 못한다. 의사는 치료를 하면서 환자에게 치유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치료를 한다고 반드시 치유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치료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치유는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치유에 대한 정의를 한 마디로 내릴 수 없다. 치유의 개념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치유를 정의하지 않고 치유에 대해 설명을 한다는 것도 우습게 된다. 어려운 개념에 대한 정의는 짧게 그리고 쉽게 되지 않는다. 따라서 치유에 대한 정의를 억지로라도 내려보고자 한다. 무리가 있더라도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는 바이다.
치유는 원상 복구하는 과정이다 : 회개란 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작업이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가 원래의 길을 찾아가는 작업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개와 치유는 서로 통한다. 회개를 하려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못한다. 회개를 철저하게 해 줄 수 있는 절대자의 도움이 없으면 적당한 회개가 되어버린다. 치유도 마찬가지이다. 혼자서는 치유가 안 된다. 절대자의 허락이 있어야 치유가 된다.
치유는 동기이다 : 동기가 없는 결론은 없다. 치유를 간절히 바라는 동기가 주어져야 한다. 스스로의 동기도 가능하겠지만 동기를 부여받는 과정도 중요하게 된다. 큰 동기는 큰 치유, 작은 동기는 작은 치유, 지속되는 동기는 지속되는 치유, 중지된 동기는 중지되는 치유가 일어나게 된다.
치유는 마음으로부터 오게된다 : 심신의학에서는 몸과 마음이 50 대 50이라고 한다. 또한 심신의학에서는 우리의 몸에는 제약공장이 있어 각종 약들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최고 300여 가지나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약들을 나오게 하려면 마음이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질 날이 오겠지만, 하여튼 마음이 치유에 작용하는 바는 생각하던 것보다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치유는 과정이다 : 치유가 목표나 종착점이 아니다. 치유는 목표나 종착점을 향하여 가는 과정이다. 어떻게 보면 과정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과정에 들어가면 일단은 치유가 되는 것이다. 치유의 길로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강조할 수 없다. 과정에 들어서기만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치유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계속적인 치유의 과정이 지속되어야 한다. 치유란 중지할 수 없는 과정이다.
치유는 변화다 : 병의 소리가 있고, 병든 몸의 목소리가 있다. 그 소리들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 난 후에는 이에 따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 치유가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생활의 철저한 변화는 물론 마음의 확고한 변화도 같이 있어야 한다. 안 밖이 모두 변해야 치유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치유는 의식(儀式, ritual)이다 : 의식은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해준다. 입학식, 졸업식, 결혼식, 장례식에는 모두 일정한 의식이 있다. 결혼식에 와서 장례식에 대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모두 결혼을 축하해주려는 마음이 생기게 만드는 것이 결혼식인 것이다. 일상생활에도 의식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에는 종교의식이 있다. 믿음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종교의식인 것이다.
치유는 어떤 상태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가 온 생활을 하고 마음의 변화도 같이 왔다고 하더라도 어떤 상태에 들어가야 한다. 옛날 희랍의 꿈 사원에 가서 병을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 꿈 사원이 있던 곳은 하나같이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세속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꿈 사원에 가기로 마음먹은 사람들 자신이 어떤 의식에 끌리기를 원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왜냐하면, 혼자서 스스로 얻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 치유이기 때문이다. 이때 아주 적절한 의식이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된다. 물론 의식의 내용과 의식을 집전하는 성직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게 된다.
치유는 용서이다 : 긍정적인 생각은 진행되는데 반해, 맴도는 생각은 부정적이다. 맴도는 생각을 끊는 것이 바로 용서이다. 용서해 주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에 위협을 받았다는 생각이 맴돌기 때문인 것이다. 나를 더 큰 그림 속에 넣고 다시 들여다 보아야 한다. 내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어 있을 것이다. 내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고 가해자의 입장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기게 될 것이다. 용서는 자아중심의 기억 때문에 더 어렵게 된다. 사람의 기억장치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기억이 주관적이지 않으면 인격이라는 것이 없게된다. 지식의 나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근저에 깔려있는 과학을 이해하면서 맴도는 생각을 끊는 방법중의 하나가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큰 글을 쓰다보면 용서해 줄 생각이 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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