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꾸는 꿈 | 신약에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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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남 작성일12-12-15 05:20 조회4,562회 댓글0건본문
신구약을 통틀어서 꿈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려면 우선 꿈에 대한 용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당시의 꿈 기록은 꿈, 이상, 천사가 나타남, 황홀경, 영적 경험 등의 표현을 통해서 이루진 바 있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이들 용어들 사이에는 아주 선명한 차이점들이 발견 안 된다.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을 히브리어로 번역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헬라어와 히브리어 두 언어 사이에 있는 차이 때문에 생긴 현상인 것이다.
언어는 생활 속에서 나오게 되어있다. 즉 생활이 없는 곳에서는 언어가 발달되지 못한다. 반면에 생활이 있고 또한 그 생활이 복잡하게 될 때에는 이에 따른 언어도 생기고 또한 그 언어는 점점 세분화하게 된다. 꿈에 대한 헬라어와 히브리어 사이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온다.
당시 희랍인들의 꿈 문화는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었으며 희랍어에서는 꿈에 대한 용어들이 세분화되어서 쓰여지고 있었다.
꿈에 대한 헬라어는 원칙적으로 시각적인 표현이다. 이는 당연한 일로서 꿈은 원칙적으로 시각적이 현상이기 때문이다.
헬라어의 꿈에 대한 언어는 실체적이 아니고,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의식 이전(무의식)으로부터 오는 즉 다른 차원의 세계로부터 오는 꿈에 대한 정교한 어감과 내용을 안고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희랍 문화가 신약성경 기록에 영향을 끼치게 됨으로 희랍어를 통해서 신약에 나오는 꿈을 이해해야만 할 것으로 여겨진다. 몰톤 켈씨는 헬라어 중 다음의 12 가지 꿈에 대한 용어를 구분해서 꿈을 이해하려 했다.
꿈(Onar) : 잠 잘 때 오는 어떤 내용이라도 이를 기억할 수 있을 때 이를 꿈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꿈에 해당된다. 깨어있을 때의 시각적인 경험과 반대되는 현상으로 잠 자고있을 때 오는 시각적인 경험과 기억을 꿈이라고 불렀다. 예를 든다면, 마태복음에 나오는 요셉의 꿈들이(1 : 20, 2 : 12, 2 : 13, 2 : 19, 2 : 22) 이 경우에 해당된다. 또한 빌라도의 부인이 꾼 꿈(27 : 19)도 여기에 해당된다. 꿈이란 표현은 희랍인들에게 전부터 고전적으로 제일 많이 쓰여지던 용어이다. 즉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꿈이나 이상의 내용도 상당히 세분화해서 생각할 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가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잠잘 때 본 이상(Enypion) : 희랍어에만 있는 표현으로 잠 잘 때 본 이상과 사건들을 의미한다. 잠 잘 때 발생하는 사건이란 뜻을 갖고있다. 따라서 이런 표현을 쓸 때는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보인다. 놀랄만한 내용을 갖고있다.
이상 : 희랍어에서 나오는 이상에는 세 가지의 뜻이 있고 이들이 신약에 표현되어 있다. 희랍어 중 호라오(horao)라는 동사에 그 어원을 두고있다. 이 어휘에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들을 본다는 뜻과 실체가 아닌 것을 본다는 두 가지의 뜻을 갖고있다.
이상 I (Horama) : 가장 보편적인 용어이다. 신약에 12번이나 나온다. 그 중 사도신경에 11번 나온다.(마 17 : 9 ; 행 7 : 31, 9 : 10,12 ; 10 : 3,17,19 ; 11 : 5 ; 12 : 9,16 ; 16 : 9,10 ; 18 : 9) 이 표현은 밤중에 받은 이상과 자면서 얻은 경험과 깨어있을 때의 경험을 통틀어서 쓰고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꿈과 이상 양쪽에 쓰여지고 있다. 호라마(horama)가 히브리어로 번역될 때에는 꿈과 이상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 꿈과 이상에 대하여는 본문의 흐름에 맞추어서 이 둘을 구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실체적인 것과 비 실체적인 것을 구별할 때에도 본문의 흐름에 따라서 구별해서 읽어야 한다.
이상 II (Horasis) : 이 표현은 눈이라는 기관의 기능을 나타낼 때 쓰여졌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것을 볼 때(행 2 : 17 ; 계 9 : 17)에 주로 쓰여졌다. 그러나 보는 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실질적인 물체나 사건을 볼 때에 쓰여지는 단어가 아니다.
이상 III (Optasia) : 이 말 역시 초자연적인 시각에 쓰인다. 그러나 이 말은 수동적이다. 즉 스스로 보여주는 상태일 때 쓰인 말이다. 예를 든다면, 꽃이 피어난다라는 상태는 꽃에 주된 입장이고 이런 상태를 보여줄 때 보이는 것이다.(눅 1 : 22 ; 24 : 33 ; 행 26 : 19 ; 고후 12 : 1)
스스로 나타나는 경우 :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의미한다. 예를 든다면, 군인제복에 붙어있는 각종 훈장의 모습이 보이는 경우와 같은 때에 쓰이는 표현이다.(사도행전 23 : 11 ; 27 : 23)
황홀경(Trance ; Ecstatic) : 놀라움과 혼란스러움이 들어간 내용일 때가 많다. 어떤 때는 두려운 경우도 있다. 예수의 기적을 보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면 된다.(마 5 : 42 ; 눅 5 : 26) 예를 더 든다면, 비어있는 무덤을 보는 제자들의 모습(마 16 : 8)이나 베드로가 처음으로 병자를 고쳤을 때(행 3 : 10) 등이다. 사람들이 평소에 경험 못하던 사건을 보면서 놀라는 형태이다.
성령 속에서 : 황홀경과 비슷하게 쓰여지고 있다.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때 아마 틀림없이 이런 상태였을 것이다.(계 1 : 10) 이런 상태에서는 이상이 보이기도 하지만, 성령에 의해서 이상의 뜻까지도 같이 알게되는 상태이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예수가 마귀의 시험을 받게되는 경우(머 4 : 1 ; 막 1 : 12 ; 눅 4 : 1)라든지 엘리자벳이 성령의 알려주심을 따라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된 것을 알게된 경우(눅 1 : 41) 등이다.
천사(Angel) : 신약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천사는 실체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갖고 오는 경우, 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는 경우가 있다. 천사는 시각적인 현실이다. 그러나 천사가 나타나는 전후가 그렇게 명확하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천사가 나타나는 경우는 초자연적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일 때가 대부분이다. 또한 천사가 나타날 때 사람들이 조용하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천사의 기능 중에 하나가 사람들을 안심시켜 주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천사가 나타나는 경우는 누구라도 질문을 던질 수 없을 상황이 되어있다. 그리고 천사가 나타나는 상태는 장면의 앞뒤가 천사로 인해서 잘 짜여지게 된다.
마귀(Demon) : 신약 전체에 걸쳐서 마귀가 나온다. 마귀는 사람에게 씌우는 경우도 있고 또는 꿈이나 이상 중에 나타나기도 한다. 천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데 비해 마귀는 그 정체가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마귀는 실체적인 존재가 아니고 꿈이나 이상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정체를 의미한다. 마귀는 부정적인 영적인 체험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귀가 실체적인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으나 허구적인 것은 아니고 강력한 성질을 갖고있음으로 사람들의 몸이나 영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서 큰 문제를 야기한다.
시각적 경험, 청각적인 경험(Blepo and Eido) : 계시록 1장 2절에 나오는,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느니라에서 보는 것과 같은 표현에 나온다. 마찬가지로 1장 11절에 나오는,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에서 듣는 것과 같은 표현에도 나온다. 이 표현은 시각적 또는 청각적인 경험을 나타낼 때 쓰인다. 이상(horasis)과 거의 비슷하게 쓰여지고 있다.
계시(Apokalypsis) : 희랍 말에서 펼쳐짐을 의미한다. 즉 지금까지 가려져 있던 비밀이 벗겨지면서 밖으로 나타남을 의미한다. 실체적이 아닌 것 즉 추상적인 것에 대한 것이나 또는 하나님의 경지에 있는 것이 알려질 때에만 사용된다. 신약 전반에 걸쳐서 나오는데 첫째는 성령의 인도로, 둘째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셋째는 꿈을 통해서, 넷째는 직감적인 방법의 여러 가지가 있다. 희랍어는 Apokalysis와 성경에 나오는 영어인 Apocalypse와는 다른 용어이다. 전자는 희랍어 중 하나의 어휘에 지나지 않으나 후자의 것은 신학적인 뜻을 갖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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