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꾸는 꿈 | 기독교의 전통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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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남 작성일12-12-15 05:17 조회4,028회 댓글0건본문
기독교에는 꿈이 아주 풍부하게 있었다. 기독교의 전통이었던 것이다. 구약, 신약을 통틀어서 마찬가지이다.
초대교회 때에도 꿈은 있었다. 교회의 교부들이 하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꿈을 해몽해주는 것이다. 그들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기독교에는 꿈이 거의 완벽하게 사라져 버렸다.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전통 중에 한가지가 없어진 것이다.
앞에 언급한 꿈에 대한 기록은 전부 과학을 기초로 해서 쓴 것이다. 과학이라야만 고개를 끄덕거리는 현대인들이기에 과학에 의존해서 꿈 이야기를 한 것이니 이를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물질과 육체에 관한 언어라면, 영혼과 마음에 대하여는 다른 언어가 있어야 설명이 될 것이다. 영혼과 마음을 다루는 종교를 과학으로 풀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뻔해진다. 종교도 과학의 한 가지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과학은 이론과 원인과 이유로 이끌어 간다. 그러나 종교는 이론과 원인과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왜 현대의 종교에서는 굳이 이론과 원인과 이유만을 고집하고 있을까? 물론 그 원인에는 역사적인 사건들과 이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토마스 아키나스, 루터, 칼빈, 바드, 볼트만 등이 기독교에서 꿈을 없애버린 것이다. 꿈만 없애버린 것이 아니고, 이들이 기독교로부터 치유사역도 같이 없애버린 사람들이기도 한 것이다.
꿈과 치유사역을 없애버린 현대의 기독교는 메마르고 단조로운 종교로 변해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창 24 :11). 그러나 친교는 교회기능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심리학자이고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그의 신앙은 그의 저서인 각종 신앙적인 체험에서 개인의 신앙적인 체험을 기술한다.
하나님을 찾고 또한 하나님과 나 사이의 교제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도와주는 곳이 교회인 것이다.
칼 융은 모든 면에서 항상 개인적인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믿음에 대하여도 개인적인 경험을 중요시했다. 융은 하나님은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존재라면 그런 하나님에게는 흥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의 뜻은 간단하다. 하나님은 개인들이 경험할 수 있는 존재이고 또 이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융은 계속해서 말한다. 만약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경험이 가능한 존재라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설정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또한 이 관계설정이 나의 인생에 변화를 초래해야 한다. 우리는 윌리엄 제임스와 칼 융의 고백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있게된다.
영혼에 관심을 갖고있던 심리학자가 바로 융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융은 하나님을 하나의 심리학의 대상물로 삼고있다.라고 말하면서 융은 환원주의자라는 신학자들의 비난을 듣게된다. 이에 대하여 융은 신랄하게 반격한다. 심리학자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 어리석은 사람들만이 영혼을 마치 자기들 주머니에 있는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줄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융은 다음과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심리학자들이야 말로 영혼을 마치 자기들 주머니에 있은 것 같은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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