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꾸는 꿈 | 교부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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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남 작성일12-12-15 05:24 조회4,458회 댓글0건본문
오늘날의 기독교 전통은 초대교부들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꿈에 대하여는 신구약을 통해서 보는 것 이상으로 초대교부들의 꿈은 각별했다. 거의 모든 초대교회 때의 교부들은 꿈을 하나님과 교통하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 전통은 치유사역을 부인한 어거스틴에게까지도 전승된다. 한 예를 든다면, 당시의 교부들 중 가장 대표적인 터튤리안(Tertullia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인간들의 지식은 꿈을 통해서 오는데 대하여 한 점의 의심도 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과 같이 메마른 영성에 비해 볼 때 당시 사람들의 영성은 아주 비옥했다. 사람들이 점점 영악해지고 있으며 지식을 숭상하는 풍조가 널리 퍼지고있는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현실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믿었고, 또한 다른 세계를 갈망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현실에 너무나 급급하다 보니 다른 세계에 대한 갈망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영성이 흐려질 수밖에는 없게 된 것이다.
꿈이란 다른 세계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매체가 되어 하나님과 교통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반면에, 현실에 만족한 현대인들에게는 꿈 같은 비과학적인 현상에 대하여는 관심을 둘 시간마저 없어, 자연히 하나님과 교통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없어지게 된 것이다.
꿈은 비이성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이성적인 사람들은 꿈을 믿을 수 없게된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꿈을 믿었다. 그 당시의 사람은 비이성적이었기 때문인가? 결코 그렇지 않은 것이 당시의 사람들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사람들 못지 않게 이성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본래부터 비이성적인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비이성적인 꿈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현대인들은 비이성적인 본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성적인 줄 착각하고있는 있는 것이다. 물질문명에 찌든 모습에 이성적인 것만 찾고있는 현대인들의 고뇌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꿈에는 물론 많은 현상에 대하여 혼란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꿈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 때의 여러 교부들의 꿈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이 방면으로 쓰여진 책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사도들의 교부들(Apostolic Fathers)이란 책이다. 즉 사도들이 살아있을 당시와 겹치면서 사도들을 만나 보았을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 쓴 책이다. 이들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당시 교회에서 집대성해서 놓은 글들이 있다.
2세기로부터 3세기에 걸쳐서 있던 이들의 글은 외경(apocrypha), 사도들의 행적, 및 서간(epistle)의 내용형식이었고 또한 예수와 사도들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의 기록이기보다는 그들의 상상력으로 쓰여진 신앙 고백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제외를 당하게 된다. 하여튼 이들의 글들이 모아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도 꿈에 대한 내용은 많이 제거된다.
그중 인기가 있었던 책 허메스의 양떼(Spepherd of Hermas)는 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책은 이상으로 시작되어 저자가 잠에 빠지면서 영혼이 돌아다니면서 본 내용을 적어놓고 있다. 이런 잠 속의 이상은 이어서 꿈속의 이상으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려면, 상징에 대하여 따로 연구해야 할 정도로 되어있다. 이는 바로 꿈의 내용과 일치하는 대목으로 현대의 융 심리학에서 취하는 입장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실지로 융의 심리학에서는 허마스의 꿈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허메스의 양떼는 당시에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된다.
외경 속에 기록되어 있는 꿈에 대한 글들 중에 상당히 흥미로운 것들도 있다. 인도에 있는 도마 사도에게 주께서 나타나 그에게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지시하시는 내용이 있다. 나중에 도마의 마지막 날의 꿈에는 한 아름다움 젊은이가 나타나 도마 사도에게 편안함을 주면서 도마 사도의 마지막 날에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려준다. 이 내용은 "도마의 종말(Consummation of Thomas)" 책에 나온다.
외경 속에는 에덴의 동산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나온다. 그 내용에는 이브의 꿈에 가인이 그의 동생을 죽인다는 내용이 실려있어 이브는 그녀의 한 아들이 제명에 죽지 못함을 알게된다는 것이다. 외경 속의 또 하나의 꿈 이야기는 이삭이 아브라함이 죽은 꿈을 꾸게 되는데 동시에 아브라함은 천사장 미카엘로부터 꿈 이야기와 그 꿈에 대한 해몽을 이삭 이전에 먼저 알게된다는 내용도 있다.
150 AD 경의 기독교는 내외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외부의 공격은 당시 로마제국의 기독교 탄압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내부의 공격은 교회의 분열과 함께 영지주의를 비롯한 이방인들의 생각이 교회로 침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독교는 기독교의 교리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정리정돈을 해서 내외로 발표해야하는 급박한 상태에 몰려 있었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헬라적인 지식과 신학상의 논증법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이 추구하고자 하던 것은 이론으로도 맞고, 설득력이 있는 교회의 가르침을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후세에도 잘 알려진 져스틴 마터, 이레나우스 터튤리안, 클레멘트, 오리젠, 아타노시우스, 어거스틴, 나이싸의 그레고리. 시네시우스, 크리소스톰 등 쟁쟁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글과 신앙관은 당시로서는 가장 앞서가는 세계관 위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플라톤이다. 물론 플라톤은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다. 예수탄생 이전에 태어난 그에게 예수의 복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플라톤의 세계관과 영혼, 꿈 등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 비슷한 면이 있다. 따라서 플라톤의 철학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헬라 식의 이론과 철학이 기독교에 더 풍부한 내용을 전달하게 된다. 이방인의 생각으로 당시의 어려웠던 상항을 이론적으로 물리치는데 큰 일을 해내게 된다. 물론 그들의 세계관이 오늘날의 세계관과는 많이 차이가 난다. 그러나 비록 두 세계가 다른 세계관을 갖고있기는 하지만 신앙관에서도 차이가 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시의 이교도인들은 꿈에 대하여 상당히 깊숙한 이론과 실제를 갖고있었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이교도인들의 생각이 교회에 침투하는데 대하여 이를 막는데 전력을 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당연히 이교도인들의 꿈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반대하고 이를 막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교부들은 다른 것은 다 막았어도 꿈에 대해서만은 이교도인들의 생각과 일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은 꿈과 이상이란 하나님이 각 개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매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꿈에 대한 경고도 아주 드문 편이었다. 구약에 나오는 경고 보다 더 경한 편이었다.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은 꿈에 대하여 상당히 너그러운 태도를 갖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다른 모든 면에 대하여는 반대를 한 이교도들의 생각과 그들의 철학이었지만, 꿈에 대해서만큼은 기독교인이나 이방인들이나 모두 꿈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헬라문화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믿어지는 대목이다. 이 세상에 있는 현실 이외에 다른 차원의 현실이 있고 이 두 현실을 연결해주는 것이 꿈이라는 플라톤을 비롯한 희랍의 희곡작가들과 같은 생각이었고 이런 꿈에 대한 태도를 당시의 교회에서는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다음과 같은 교부들의 활동이 있었다.
져스틴 마터(Justin Martyr), 이레나우스(Irenaeus), 클레멘트(Clement), 오리젠(Origen), 터튤리안(Tertullian), 퍼페튜아(Perpetua), 그레고리 타우마터거스(Gregory Thaumaturgus), 쥴리우스 아프리카노스(Julius Africa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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