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자살과노화 | 삶과 죽음을 명확히 말할 수 없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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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남 작성일12-12-18 00:45 조회3,028회 댓글0건본문
완전히 죽은 세포와 죽어가는 세포를 구분하기가 말처럼 그렇게 명확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중요한 한 기관의 기능이 실패하게 되면 나머지 건강한 기관들의 기능도 점차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신장장애에 걸린 사람은 아무리 신장투석을 하더라도 어느 기간이 지나면 심장 및 혈액순환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간의 문제가 심각하게 될 때에도 나머지 모든 기관의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심장이나 동맥에 문제가 생겨도 나머지 기관의 기능이 떨어지게 되며, 폐와 뇌도 마찬가지이다.
인공 심폐기를 달아서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 보존하면서 다른 기관들의 기능을 어느 정도는 유지할 수 있게된다. 이런 경우에 현대의학에서는 상해를 받은 기관은 물론 나머지 기관들의 기능을 보존하는 치료에 상당한 발전이 있어왔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이지, 시일이 충분하게 지나게 되면, 나머지 기관들이 하나씩 그 기능을 잃어가게된다.
이런 경우에 죽은 세포(기관)와 다른 죽어가는 세포(기관)들에 대한 온전한 구분을 하기가 어렵다는 내용인 것이다.
여기에 사망에 대한 법적개념까지 도입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하게 된다. 많은 국가에서는 뇌가 완전히 사망했을 경우에는 법적인 사망이라고 선언한다. 이때 다른 기관이 아무리 정상적으로 작용하고 있더라도 상관이 없다. 법적인 사망인 것이다. 사망과 사망 가까이 있는 세포들 사이가 명확하지않은 또 한가지의 예인 것이다.
이렇게 사망과 생존이 명확치 않은 상태에 대비되어 있는 것이 세포자살인지도 모른다. 세포자살이 신기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생명 그 자체는 더욱 불가사의하다고 할 수 있다. 세포자살에 대한 연구와 이에 대한 지식의 탐구는 결국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삶과 죽음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을 수 없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 북미 나무 개구리(North American wood frog)는 겨울철의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 경우에는 온 몸이 완전히 얼어붙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개체라고 보기 힘든다.
그러나 북미 나무 개구리는 따듯한 봄철이 오게되면 다시 살아나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된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곤충들은 얼마든지 있다. 삶과 죽음 사이가 명확치 않은 상태인 것이다.
* 물 곰(water bear, Tardigrades)이라는 자그마한 (0.05-1.2 mm) 동물은 몸무게의 85%가 물인데 물을 다 잃어서 몸무게의 3%까지 내려간 후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물만 다시 얻게되면 완전히 회생해서 정상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몸무게의 3% 이내의 물을 갖고있는 생명체를 살아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할 수 있다.
* 북미 나무 개구리만 동결로부터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실험실에서는 인간의 조직을 동결시킨 후 다시 환원시켜서 실험을 계속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찬 호수에 빠진 후 호흡과 맥박이 다 끊어진 아이가 병원에 후송된 후 다시 살아났을 뿐 아니라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되었다는 언론보도에 종종 접하게 된다.
위와 같이 삶과 죽음 사이에 명확한 선이 그어져있지 않다. 그러나 생명현상을 크게 볼 때, 살아있다는 것은 새로운 세포가 계속해서 만들어져야하며, 때가 다 된 세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없어져야 하는 현상이 같이 있어야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새로운 세포가 생기는 가장 최초의 사건은 수정된 난자가 최초의 세포분열이 생기면서 아직 조금도 분화(differentiation)되지 않은 세포들(줄기세포, stem cells,)이라고 할 수 있고, 수명이 다 된 세포는 없어져야 하는데, 세포자살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세포들이 깨끗하고 조용하게 없어지게 되는 현상을 세포자살이라고 보면된다.
줄기세포와 세포자살은 하나의 단위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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