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 인식과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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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남 작성일12-12-15 00:53 조회3,607회 댓글0건본문
인간의 두뇌에는 약 1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뇌 신경세포들은 가로나 세로나 아주 복잡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복잡하게 연결되어있는 뇌로부터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수많은 순열과 조합을 갖게되는 것이다. 즉 인간의 두뇌를 신경세포의 숫자대로 그 기능의 범위를 결정한다면 커다란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를 비교해서 이해해 보기로 한다.
인간의 두뇌가 컴퓨터와 다른 점을 지적한다면 감정 이외에도 바로 신경세포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점일 것이다. 컴퓨터도 칩들 사이에 연결이 되어있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가 컴퓨터와 다른 점은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작업인, 신경세포들 사이에 그 연결이 지워지기도 하며 또한 새로운 연결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특징을 갖고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창조성과 인식성은 이렇게 광범위하면서도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인식과 감정도 물론 뇌신경 세포들의 작용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많은 경우에 감정은 인식의 지배를 받지 않고 감정 스스로의 일을 한다.
즉 의지나 지식과 같은 인식적인 기능은 감정과는 별 특별한 관계를 설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감정은 감정대로의 일정표를 갖고있고 인식 또한 그 나름대로의 일정표를 갖고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 둘이 같이 작용한다. 또 가끔 가다가 인식과 감정이 연결되어 강력한 작용을 하기도 한다.
인식과 감정이 같이 일을 할 때 인식과 감정 둘 중에 주로 어떤 것이 더 강력하게 작용할까?
감정이다. 인식은 어디까지나 감정의 종속적인 관계를 갖고있다. 감정 먼저 작용하고 인식이 따라오게 된다. 감정이 작용하고 난 후에 인식이 이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번 지적하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인식이나 감정을 원칙적으로 같이 일을 하게 되어있다. 다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이에 대하여 자세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가끔가다 감정과 인식이 단절된 사람들이 있다. 뇌에 사고를 당했거나 또는 수술에 의해서 감정과 인식이 단절되게 된 것이다. 이럴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피네쓰 게이지(Phineas P. Gage)라는 사람이 있었다. 미국의 버먼트 주에서 철도건설 노동자로 일하고 있던 사람이다. 1848년 여름에, 조장으로 일하고 있던 그에게 인생이 뒤바뀌는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다.
다이나마이트 발파작업 중 커다란 쇠막대기가 그의 왼쪽 뺨을 뚫고 들어가 뇌 근저를 지나서 머리 위로 나오게 되는 끔직한 사고를 당한 것이다. 25살로 건장한 몸을 갖고있었고 또한 조장으로 일 할만큼 조직력과 남들을 통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갖고있었다. 이런 끔직한 사고를 당한 게이지가 정말로 운이 좋아서 치료를 받고 운 좋게 회복되게 된다. 즉 외부의 상처는 완전히 낫게되고 몸도 건강을 되찾아 철도건설 현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모든 근육도 완전하게 회복되었고 팔다리 아무 곳에도 마비증상이 보이지 않았다. 걸음도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고 손 작업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그의 접촉과 원근거리 측정능력은 완전했다. 오른쪽 눈은 정상으로 회복되었으나 왼쪽 눈은 멀게되었다.
외형적으로는 얼마든지 전과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 가능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그 자리로부터 쫓겨나게 된다. 그의 상관이 관찰해보니 사고전의 게이지가 아니고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작업장의 모든 규칙과 장비 쓰는 방법을 전과 같이 간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장비를 쓰면서 주어진 일을 해내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자기 조의 사람들도 다 기억해내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그들의 이름도 다 외울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엉뚱한 곳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생각과 말이 현실과 맞지 않기가 일수였고, 심한 욕을 하면서 동료들을 못살게 만드는 것이었다. 인간의 행동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기 일수였다.
즉 사고로 인하여 게이지는 그의 인식과 감정이 분리된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본 바는 인간은 인식만 갖고는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감정은 스스로의 계획과 목표를 갖고있다. 물론 감정이 저절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을 통해서 전부터 있어오던 감정이 있고 심지어는 타고날 때부터 오는 감정도 있다.
감정은 인생살이의 순서를 가르는 일에 우선한다. 기쁘고 즐거운 감정을 수반하는 일에는 우선적으로 참여하는 반면에, 슬프거나 아픈 경험이 있는 일에는 적극적이고 거의 본능적으로 이를 피하게 된다.
이때 의식적이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몸과 마음이 돌아가게 마련이다. 감정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즉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과 생존에 방해가 되는 것을 알아내어서 이에 맞게 행동하고 생각하게 된다.
감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생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심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전형적인 예이다. 인간들이 말하는 내용을 잘 검토할 때 말도 감정에 따라서 좌우됨을 알 수 있게된다.
이성적으로만 말하는 사람은 개성이 없이 마치 로버트가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느낌을 주게된다. 감정이 들어 있어야 어떤 개성을 갖고있는 말이 되는 것이다.
감정은 충동을 통해서 발표된다. 충동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는 충동 뒤에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충동을 억제하려고 노력한다. 심지어는 충동적인 행동과 말은 나쁘다고 말하기까지도 한다. 인식과 이성적인 면으로 만 볼 때 하는 말이다.
인간사회는 인식과 이성으로 얇게 덮여져 있는 세상이다. 다시 말한다면, 인간의 사회는 감정을 뒤로 제치고 인식과 이성을 앞세우라고 가르치고 또 이를 배워왔다.
감정은 숨겨야 한다고 배워 온 것이다. 따라서 본래의 감정을 숨기고 겉을 인식과 이성으로 도배질 함으로서 본래의 모습과 색깔을 버리고 인생을 본래의 모습을 바꾸고 또한 각종 색깔로 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교육은 감정을 숨기고 인식과 이성만 강조함으로서 지식을 최고로 여기고 있다. 지식은 항상 변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감정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지식을 최우선으로 치는 현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많은 정신병은 감정처리가 잘못되어서 발생한다.
외국어를 모르고, 산수를 모르고, 과학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정신병은 거의 없다. 충동을 통해서 나오는 감정을 인식과 이성으로 바르고 난 후에 나오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수수께끼가 많고 남에게 혼란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식과 감정을 대비해서 설명할 때 감정과 인식의 차이점들이 들어 나게 되어있다.
감정이 뒤에 있고 인식과 이성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감정이 인식과 이성 앞에 나와있는 것도 아니다. 인식과 이성은 감정이 있어야 그 기능이 제대로 나오게 되어있다.
감정만 있을 때 인간을 짐승 같다고 말한다. 감정을 제어하는 기능이 없을 때 듣는 소리이다. 감정의 억제는 인식과 이성이 하게되어 있다. 따라서 감정의 공부는 인식과 이성의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인식론자들은 감정은 마음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감정은 오래된 지혜의 축적으로 생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지능이 감정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에는 감정이 포함하고 있는 지능도 의미하고 있다. 즉 감정에는 지능이 있는데 순수한 대뇌 표피적인 지능은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지식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감정지수이라는 말이 있다. 감정지수는 이를 간단히 설명할 때, 남의 감정을 이해해 주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인간사회에서 출세하는 사람들은 지능지수(Intelligence Quotient)가 높은 사람들이 아니고 감정지수(Emotional Quotient)가 높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감정지수가 높은 사람들이 출세를 해서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쓰고있는 것이 인간사회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잘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결정은 무미건조하고 현실에 맞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인식(이성)이 들어가 있지 않은 감정만 갖고 결정할 때에도 좋은 선택일 수 없게된다. 인식과 감정의 조화가 맞아야 의미가 있고 또한 인격이 있는 결정이 될 것이다.
모욕에 대하여는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 화 대신에 미소를 짓는다면 이에 승복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또한 승복하지 않는 행위나 말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욕에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판정을 받을 것이다.
아주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특히 생사에 관한 사건일 때에는 대개의 경우 이것저것 다 따지는 이성적인 결정보다는 어느 정도 배짱으로 결정한 것이 좋은 결정일 때가 많이 있다. 이는 오랫동안 쌓여 온 인간의 지혜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설명도 있다.
야구경기를 예로 보기로 한다. 경기 중에 뛰어난 경기를 했을 때에는 그 선수는 모든 것을 계산하고 난 후에 경기를 했다 기보다는 본능에 의한(즉 감정에 치우친) 경기를 했을 때 더 좋은 결과를 내게되며 관중들도 더 많은 열광과 지지를 보낼 것이다. 감정은 통한다. 인식과 지능은 그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입력되는 자료에 대한 처리과정만 있다. 그러나 인간에는 주어진 자료에 대하여 지능적인 처리는 물론 감정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이를 처리하게 된다. 따라서 컴퓨터와 인간이 매기는 순서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지능만 있는 컴퓨터에 비해서 인간에게는 순서를 매길 수 있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매기는 순서에는 그 사람의 현재의 입장, 과거의 경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즉 감정이 들어간 순서는 무의식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컴퓨터의 순서는 메마른 숫자의 검토만 받았을 뿐이다. 따라서 컴퓨터의 순서는 외형상으로는 용납될지 모르나 오래가지 않는다.
명화가 값이 나가는 이유는 명화 속에 녹여 들어가 있는 화가의 감정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다른 시간대에서 보더라도 그 명화를 통해서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감정을 같이 호흡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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