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 인식과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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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남 작성일12-12-15 01:00 조회4,228회 댓글0건본문
인식론자들은 감정은 마음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감정은 오래된 지혜의 축적으로 생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지능이 감정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에는 감정이 포함하고 있는 지능도 의미하고 있다.
즉 감정에는 지능이 있는데 순수한 대뇌 표피적인 지능은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지식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감정지수이라는 말이 있다. 감정지수는 이를 간단히 설명할 때, 남의 감정을 이해해 주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인간사회에서 출세하는 사람들은 지능지수(Intelligence Quotient)가 높은 사람들이 아니고 감정지수(Emotional Quotient)가 높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감정지수가 높은 사람들이 출세를 해서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쓰고있는 것이 인간사회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잘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결정은 무미건조하고 현실에 맞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인식(이성)이 들어가 있지 않은 감정만 갖고 결정할 때에도 좋은 선택일 수 없게된다.
인식과 감정의 조화가 맞아야 의미가 있고 또한 인격이 있는 결정이 될 것이다.
모욕에 대하여는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 화 대신에 미소를 짓는다면 이에 승복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또한 승복하지 않는 행위나 말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욕에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판정을 받을 것이다. 아주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특히 생사에 관한 사건일 때에는 대개의 경우 이것저것 다 따지는 이성적인 결정보다는 어느 정도 배짱으로 결정한 것이 좋은 결정일 때가 많이 있다.
이는 오랫동안 쌓여 온 인간의 지혜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설명도 있다.
야구경기를 예로 보기로 한다. 경기 중에 뛰어난 경기를 했을 때에는 그 선수는 모든 것을 계산하고 난 후에 경기를 했다 기보다는 본능에 의한(즉 감정에 치우친) 경기를 했을 때 더 좋은 결과를 내게되며 관중들도 더 많은 열광과 지지를 보낼 것이다. 감정은 통한다. 인식과 지능은 그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입력되는 자료에 대한 처리과정만 있다. 그러나 인간에는 주어진 자료에 대하여 지능적인 처리는 물론 감정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이를 처리하게 된다. 따라서 컴퓨터와 인간이 매기는 순서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지능만 있는 컴퓨터에 비해서 인간에게는 순서를 매길 수 있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매기는 순서에는 그 사람의 현재의 입장, 과거의 경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즉 감정이 들어간 순서는 무의식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컴퓨터의 순서는 메마른 숫자의 검토만 받았을 뿐이다. 따라서 컴퓨터의 순서는 외형상으로는 용납될지 모르나 오래가지 않는다.
명화가 값이 나가는 이유는 명화 속에 녹여 들어가 있는 화가의 감정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다른 시간대에서 보더라도 그 명화를 통해서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감정을 같이 호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감정은 인식을 통해야 하지는 않는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인간은 총체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즉 문화의 차이로부터 오는 감정의 차이는 한 개인의 인식과는 별로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예를 든다면, 한국인들이 즐겨먹는 보신탕을 서구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발산이 이루어진다. 한국인들과 서구인들의 총체적인 경험과 이로부터 올 수 있는 총체적인 인식의 차이로부터 올 수 있는 차이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감정의 범위는 아주 넓다고 할 수 있다. 총체적인 인식과 총체적인 감정은 융이 주장하는 총체적인 무의식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한 개인의 경험과 인식으로부터 오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한 집단이나 사회 또는 국가 전체로부터 올 수 있는 총체적인 인식과 감정은 각 개인의 인식과는 상관없이 경험하게 된다.
감정을 인식의 영역에 넣었던 학파에서는 총체적인 감정과 인식에 대하여 이를 설명할 길이 없다. 물론 인식에 의해서 감정을 인지할 수는 있다. 또한 인식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발생하는 감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경험하는 모든 감정이 인식이라는 과정을 통해야만 인지된다는 논거는 그 바탕이 깊지 않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감정과 느낌을 고찰해 본다면, 인식을 통하지 않고도 올 수 있는 것에 느낌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감정이 일차적이고 느낌은 이차적인 것이라고 할 때에 총체적인 감정이란 오히려 느낌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도 융의 총체적인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게 된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총체적인 무의식으로부터도 총체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인식을 거치지 않은 것은 감정이기보다는 느낌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뱀을 무서워하는 총체적인 무의식이 있다. 이는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무의식이다. 따라서 총체적인 무의식으로부터 오는 총체적인 느낌도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뱀을 보면 무서워할 뿐 아니라 이로부터 오는 느낌도 동일할 것으로 추론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감정의 발생은 꼭 의식적인 인식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인식 밖에서부터 감정과 느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감정과 느낌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는 나중에 더 큰 과정을 논의할 때 마음의 작용에 대한 이해가 빨라지게 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때 인식에는 떠오르지 않은 무의식 상태에서의 자극에 의해서도 감정과 느낌이 발생할 수 있게된다.
즉 인간의 감정과 느낌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그 범위가 넓다고 하겠다. 무의식적인 원인과 자극에 의해서 인간의 얼굴표정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는 바로 무의식과 감정과 느낌의 상관관계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즉 인간의 감정과 느낌의 깊이는 의식은 물론 무의식에도 그 뿌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즈음 텔레비젼 광고를 보면, 인간의 무의식과 무의식적인 감정과 느낌에 호소하는 내용들이 종종 보인다. 광고장면이 아주 빠른 시간으로 바뀌면서 인간의 무의식과 무의식적인 감정과 느낌을 자극하면서 광고의 효과를 기대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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